웜 샤워 기사를 쓰다 보니 따뜻한 이야기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세계를 자전거로 여행하는 부부의 이야기인데 얼굴이 하얗다고 해서 '백설기부부'란 예명으로 세계여행을 하고 있고 이 사연을 블로그에 올려 놓았다.

소개팅으로 만난 직장인 커플로 열심히 일을 하다가 결심한 자전거 세계일주는 이들에게 큰 모험이었다.

첫 여행을 호주에서부터 시작한 이 부부는, 현지인들과의 문화 교류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인 '웜샤워'를 통해 낯선 환경에 하나하나 적응해 나갔다.

그렇게 호주를 3개월 동안 여행한 후 뉴질랜드로 이동했을 때 이들은 공항에서 가방 하나를 분실하게 된다.

그 가방엔 지난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넷북이 있었고, 이 부부는 공항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손에 진땀을 쥐어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짐을 찾은 시각은 오후 8시.

이들은 호주를 떠나기 전 미리 뉴질랜드공항(오클랜드)에 도착해서 찾아갈 웜샤워 호스트집을 구해놓은 상태였다.

공항 도착 예정 시간이 오후 1시였으니 공항에서 20km 떨어진 호스트의 집까지 여유 있게 도착할 계산으로 방문 시간 약속을 오후 7시로 했었는데, 이미 넘겨버린 것이다.

친부모처럼 걱정해주며 이 부부가 도착한 늦은 밤까지 기다려주었던 호스트는 리차드와 헬렌이다.

이후로 백설기부부는 이 호스트의 집에서 6일을 지내게 된다.

집에 놀러 온 손주들과도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캠핑장에서 즐거운 추억도 쌓았다. 

그리고 3개월 후 신랑의 갑작스러운 부친상 때문에 백설기부부는 귀국을 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또 3개월 후인 얼마 전 리차드와 헬렌이 한국에 오게 된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 뉴질랜드인 부부는 자전거로 4대강 종주를 하며 한국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오클랜드에서 백설기부부의 뉴질랜드 일정을 꼼꼼히 체크해주며 도움을 주었고, 오랜 기간 동안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을 비롯해서 수많은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해주며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이 노부부는, 그러나 정작 한국에 오기 전에 많은 한국인 웜샤워들에게 방문 요청을 했었지만, 메르스 사태 기간이어서인지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자전거를 가져오지 못한 이 부부에게 당장에 자전거와 장비를 챙겨줄 사람도 없었기에, 경주에 거주하는 백설기부부는 일단 택배로 한국 휴대폰을 노부부에게 보내고 자신들의 블로그에 도움 공지를 올리게 된다. 

이후로 백설기부부를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고, 리차드와 헬렌은 경주까지 무사히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백설기부부의 안내로 경주의 아름다운 역사 유물도 관람하고.. 

  한국의 전통문화와 생활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 노부부가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백설기부부의 소개로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꽤 유명한 샵인 '바이클리'를 먼저 찾아갔었는데, 이곳에서 리차드와 헬렌은 한국 자전거 동호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용산역 인근에 위치한 바이클리는 대표자부터 직원들까지 모두 자전거 매니아들이고 동호인의 성격이 강한 사람들이다. 

바이클리 대표는 자신이 운영하는 여행자 카페 회원들 중 곧바로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을 섭외해서 이 외국인들에게 고궁 관광을 체험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자전거와 기타 장비를 제공해주는 등, 손님을 맞이하는 호스트로서의 정성을 다해주었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첫 일정을 마친 후 노부부는 본격적인 자전거여행을 시작했고 4대강과 경주를 거쳐 한달 후에 다시 바이클리로 돌아오게 됐는데, 이틀 후에 그들이 뉴질랜드로 돌아간 다음 반납한 자전거를 자세히 보니 뭔가가 붙어 있더란다. 

그것은 투명한 셀룰로오즈 필름같은 것으로, 탑튜브와 다운튜브를 보호하기 위해 리차드와 헬렌이 대일밴드를 이용해서 귀엽게 붙여 놓았던 것이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세차를 마친 바이클리 직원들을 다시 한번 놀라게 한 광경은, 한달 동안 1,300km 정도를 주행한 자전거 치고 너무나 깨끗한 자전거 상태였다. 

얼마나 꼼꼼하게 조심을 했는지 작은 스크래치 하나 없었다고 한다. 다정하고 사려가 깊지만 자신에게는 철저한 원칙을 지켜나가는 사람들. 이 흐뭇한 이야기에 등장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디지털 기기를 통해 만들어 낸 웜샤워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 의해 가장 인간적인 미담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리차드와 헬렌이 경주를 떠나고 난 뒤 백설기부부는 집에서 그들이 남기고 간 편지 한장을 발견했다. 

'읽는 내내 한참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웜샤워,그리고 여행에서 만난 친구는 만남 그 이상의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주는 것 같다. 그렇게 6개월 전,뉴질랜드에서 만난 헬렌은 나에게 큰 꿈을 주었고 한국으로 찾아온 헬렌은 나에게 그 꿈을 실행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서울에 도착한 헬렌과 리차드는 한국을 떠나기 전 바이클리 사장님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 오클랜드를 지나가는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는 꼭 우리 집에 웜샤워 게스트로 오길 바란다. 한국 자전거 여행자들은 대환영이다."